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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정보

넷플릭스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

by !-눈누난나-!! 2021. 3.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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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대한 서사시는 파이퍼 커먼의 동명 회고록 <오렌지 이즈 더 뉴블랙> 을 바탕으로 만들어졌고, 2013년 시즌 1을 시작으로 2019년인 작년 시즌 7로 막을 내렸다. 넷플릭스 제작 작품들이 명성을 가질 수 있게 해준 초기 일등공신 중 한 작품으로, 매 시즌마다 에미상을 비롯한 온갖 상을 휩쓸었다.

 

주인공은 뉴욕의 부잣집 딸래미 파이프. 20대 초반 만난 마약 밀매상 연인의 마약 운반을 1번 도와준 그녀는 10년이 지난 뒤 그 일로 교도소에 수감되게 된다. 그렇게 시작된 이야기는 파이프가 만나는 온갖 군상의 교도소 내 인물들, 파이프와 그들과의 관계, 그들끼리의 관계, 그리고 인물 하나하나의 숨겨진 이야기들을 펼쳐놓는다.

 

 

나는 이 시리즈가 나왔던 2013년 이 드라마를 시청한 적이 있고, 그 당시 높은 수위와 익숙하지 않은 이미지들에 거부감이 들어 보기를 중단했었다. 이후 2017년, 다시 말해 내 사고회로에 페미니즘 필터가 장착되고 난 뒤 이 시리즈를 다시 우연히 접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 알게 되었다. 이 드라마는 그 때의 내가 목마르게 찾아해메던 모든 이미지들을 구현하고 있다는 걸. 몇 년 전 이 드라마가 싫었던 이유도, 이제는 이 드라마를 보기 전부터도 좋았던 것은 같은 이유였다. 여자가 '너무 많이' 나온다는 것.

 

그 당시 내가 읽고 보고 선망하던 서사의 창작자와 주인공은 대부분 남성이었다. 그 불균형한 성비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기 시작한 것이 20대 후반이 되어서다. 나는 그전까지 남성들에게 내 자신을 기꺼이 이입했고, 사실 거기까지는 문제가 없다. 문제는 여성의 이야기를 주변부의 서사라고 여기고 업신여기는 버릇을 부끄럽게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똑같은 작품을 놓고 극명하게 대조되는 첫반응을(예전에는 여자가 많아서 싫었고, 이제는 여자가 많아서 좋은) 하는 내 자신을 보니 그간 겪은 변화를 더 크게 체감할 수 있었다. 그런 변화의 리트머스지가 되어준 작품이니 시청을 시작하기 전부터 마음이 들떴던 것 같다.

 

어린시절 파이프는 아버지의 외도를 목격한 뒤 엄마에게 곧바로 목격을 전하지만 엄마는 그녀의 말을 못들은 척 한다. 외도 자체보다도 엄마의 반응에 더 충격을 받은 그녀는 이해되지 않는 이 상황을 사랑하는 할머니에게 털어놓는다. 할머니는 파이프의 이야기를 한참 듣고난 뒤 온화한 얼굴로 말한다. "파이프, 가끔은, 진실은 중요하지 않아."

 

이야기 전반을 깔고 있는 오뉴블의 주요정서는 내 인생 철학과 맞닿아있었다. "고통은 순위로 매길 수 있다." 인간 각자의 고통은 고유한 것이 아닌 크기의 순서로 나열할 수 있다. 다시 말해 타인의 고통이 내 눈에 배부른 소리로만 들릴 때 나는 그것을 저주하거나 냉소할 수 있다. 또한 내 고통이 누군가에게 배부른 소리로 들려 그로부터 저주 받는다면 그 저주를 달게 받겠다.

 

반면 이런 생각도 한다. "고통은 (당연히) 측정할 수 없다." 내 감기는 상대방의 암보다 시급하고, 내가 암에 걸려도 감기 걸린 상대는 내 암에 관심이 없다. 자신의 몫을 살아낼 뿐 결국 우리는 상대의 고통 그 근처에 결국 각자의 고통은 고유한 것일 뿐 측정하고 나는 이 상반되는 두가지 입장에 모두 동의하며, 오뉴블의 서사도 이와 궤를 같이 한다.

 

이 냉소적인 세계관이 오뉴블의 기본 장르인 코미디와 합해졌을때, 사무치도록 잔인하지만 결국 웃음이 세어나오는 대사들과 장면들을 보았을 때마다 나는 얼마나 짜릿했던가.

 

긴 이야기, 많은 인물. 현실 세계에서 타인을 깊이 알아갈 때 느끼는 다양한 감정들. 좋기도, 싫기도, 고맙기도, 성스럽기도, 혐오스럽기도, 시야가 넓어지기도, 마음이 협소해지기도하는 모든 감정들. 360도 카메라로 대상을 정밀히 촬영하듯 경험하고 나면 그 어떤 타인도 단일하고 완전한 인격은 없음을 실감하게 된다. 인간은 복잡하고 이상할 뿐. 오뉴블의 주인공이었던 파이프 뿐만이 아닌 거의 대부분의 인물들에게서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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